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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계룡사 방화/거제 계룡사 대웅전 전소/방화범 체포

by ISSUEHak 2023.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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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계룡사 방화/거제 계룡사 대웅전 전소/방화범 체포

거제 계룡사 방화 대웅전 전소 방화범 체포

거제경찰서는 계룡사 내 대웅전에 불을 지른 50대 남성에 대해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3일 밝혔다. 경남 거제시 계룡사에 불을 지른 50대 남성이 절에서 술을 못 먹게 한 것에 화가 나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는 1월 3일 0시 33분께 대웅전 남쪽 창문에 쳐진 커튼에서 발화돼 순식간에 큰불로 변했다. 경찰은 방화범 A를 화재 발생 약 3시간 만에 인근 주점에서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날 화재로 계룡사 대웅전은 완전히 전소됐다. 계룡사 주지 스님이 공개한 폐쇄회로에는 50대 남성이 왼손에 주머니,우측 어께에 가방을 멘 채로 이날 0시 25분께 계룡사 대웅전 입구에 나타났고 이어 법당 내에서 라이터로 커튼에 불을 붙이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어 옆 건물에서 베트남인 신도가 예불을 드리고 나오다 A씨가 폐쇄회로에 포착된 지점에서 대웅전 창문에서 비치는 불빛을 발견, 화재로 확인하면서 휴대폰으로 신고하는 장면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화재 신고는 베트남인 신도의 신고로 거제소방서 112신고 최초 0시 43분으로 접수됐다. 이날 화재는 거제소방서 80여 명의 인력이 투입돼 오전 3시 50분께 완전히 진화됐다. 심야에 발생한 이 화재는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거제 계룡사 정보

세종대 국가에서 공인한 36사 가운데 하나로, 충청남도 공주시계룡산에 있는 절이다.
(1) 조선시대 이전의 계룡사 계룡사의 설립 연혁에 대해서는 분명히 전하는 것이 없다. 대개 갑사(甲寺) 혹은 계룡갑사(鷄龍岬寺)로도 부른다[『세종실록』 지리지 충청도 공주목]. 420년(신라 눌지왕 4) 아도(阿道) 창건설, 566년(신라 진흥왕 17) 혜명(惠明) 창건설, 혜명 중창설 등이 있으나 역사적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최치원(崔致遠)이 찬술한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의상(義湘)의 전교십찰(傳敎十刹) 중 하나로 계룡갑사를 언급하고 있어, 신라하대의 대표적인 화엄사찰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고려시대 계룡사의 정황에 대해서도 확인되는 바가 없다.
(2) 조선시대의 계룡사 1424년(세종 6) 7개의 불교 종단을 선교 양종으로 통폐합하고, 각각 18사씩 모두 36개의 사찰만을 공인할 당시 계룡사는 선종 사찰로 공인되었다(『세종실록』 6년 4월 5일). 이는 신라하대 화엄종 사찰이던 계룡사가 이후 어느 시기엔가 선종 사찰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변화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세종대에 선종 18사 중 하나로 공인된 계룡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전지는 100결이었는데 50결을 더해 주었으며, 절에서 지낼 수 있는 승려는 70명이었다. 1583년(선조 16) 정문루(正門樓)를 중수했고, 이듬해에는 대종(大鐘)을 만들었다. 종의 명문에는, 이 해에 북방 오랑캐의 전란이 일어나 충청·경상·전라 하삼도 사찰의 그릇과 쇠붙이를 모두 나라에 바쳐 병기와 화포를 주조하도록 하였기에 절의 종이 없어졌는데, 사람들이 절이란 아침저녁으로 임금의 장수를 기도하는 곳이라 하여 8,000근의 새 종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이 명문에는 ‘계룡산(鷄龍山) 갑사사(岬士寺)’라고 되어 있어, 갑사사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던 것을 알 수 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불탔으므로 전쟁이 끝나고 대웅전 등을 중건했고, 효종, 영조, 정조, 고종대를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사찰을 중수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현전하는 유물 중 중요 문화재로는 갑사철당간과 당간지주(보물 제256호), 갑사부도(보물 제257호), 갑사동종(보물 제478호) 등이 있고, 1569년(선조 2) 조성된 월인석보(月印釋譜) 목판(보물 제582호)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재가 전한다.

출처 :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A%B3%84%EB%A3%A1%EC%82%AC(%E9%B7%84%E9%BE%8D%E5%AF%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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